아오이토리

감상2021. 12. 20. 23:04

 

 

제작사/타이틀 : Purple / アオイトリ

 

평점 : 7/10

 

* Pros & Cons

 

+ 에로게에서만 가능한 양식으로 표현되는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행복의 양립

- 감상(感傷)에 의존하는 이야기 

 

* 스포일러 O

 

 

 

 

적절한 소재의 도입과 소재에 대한 탐구는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지만 너무 소재 중심적인 이야기가 되거나 이야기가 편의주의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가집니다. 가령, 영화 '인터스텔라'는 우주, 블랙홀, 양자역학 같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도 어렵고 종이와 제한된 상상력 속에만 존재하던 개념들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된 멋진 작품이죠. 과학적 오류를 최대한 배제하고자 시나리오와 연출에서 전문가의 검수 또한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소재에 매몰된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애라는 휴머니즘적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소재가 사용됩니다. 야겜도 마찬가지로, 재미있는 작품은 소재 중심적인 접근보다는 인간 중심의 접근을 할 때 태어납니다. 이러한 접근법이 시사하는 바는, 서브컬쳐에 범람하는 이능력, 이세계 판타지 같은 소재도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쁘고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죠. 현실과 동떨어진 소재로도 충분히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만 그것들이 작가의 무능과 결합되어 설정 만능주의 작품들이 태어날 뿐입니다.

 

그런데 본작 '아오이토리'는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망치는 설정 만능주의적 전개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개별 루트는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죠. 불치병이 억지스런 과정으로 간단히 치유된다던가, '구세주'니 '흡혈귀'니 하는 설정은 작중 근거가 부족하지만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편의적으로 사용되고, '악마의 각성'이라는 영문모를 소리는 주인공과 히로인이 이어지는 과정과 결과를 보기 위해 야겜을 플레이하는 니즈가 무시되고 이 게임의 목적이 '소재'임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듯 합니다. 쿠소게에 가까운 개별 루트의 이야기지만 3개의 선택지를 통해 '모든 이야기'를 읽었을 때 게임의 구조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3명의 히로인 루트는 본작 뿐만 아니라 설정 만능주의로 귀결되는 야겜들에 존재하는 가능성의 전부를 상징합니다. 플레이어는 그 모든 가능성을 읽고 온 것이죠. 그리고 그 수천 수억의 가능성에서도 플레이어가 바라는 진정한 사랑은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어디에 있나요? - 이 물음의 답을 본작의 주인공 '리츠'나 3명의 히로인의 관계에서는 제시할 수 없고, 그 이유를 작중에서는 캐릭터가 가지는 '특별함'-소재주의-이라는 속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평범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재설정하기 위해 메타적 소재가 도입되죠. '우미노 아카리'라는 캐릭터는 배경이 명확하지 않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한 갈등을 겪고 있고 평범한 능력을 가진, 작중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서 가장 관습적인 야겜 주인공의 표상입니다. 이 아카리라는 캐릭터는 '평범한' 플레이어와 가장 유사성이 높은 캐릭터이고, 아카리가 이 게임의 전체적인 구조를 인지하게 함으로써 아카리의 시점을 게임을 바라보는 플레이어 시점과 정확히 일치시킵니다.

 

그녀의 의도는 '플레이어'로서 본작의 개별 루트-모든 가능성-를 비판하고, 진정한 사랑이 시작될 수 있는 전제를 성립시키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는 단수가 아니라 다양한 환경적 배경을 가지는 다수이므로 이야기는 보편적인 재미를 추구해야 하고, 절대적으로 보편적인 재미의 전제는 논리성=충분한 근거를 가지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작위성이 사라진, 논리적 결함이 없는 자연스러운 이야기 속에서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전제가 마련되는 것이죠. 이는 또한, 모든 가능성의 이야기에 편재해있는 '소재주의', '편의주의'적 요소가 사라질 때 진정으로 주인공과 히로인이 마주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의도를 실현하는 방법에는 본작의 시작점이 작위성이라는 문제를 만들어내는 소재를 삭제한 이후로 재설정되거나, 이야기가 인과성을 가지도록 보강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후자의 방법은 작중에서는 실현될 수 없도록 제한됩니다.

 

 

게임으로서의 '아오이토리'는 주인공이 퇴장하고, 모든 소재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거되면서 그 역할을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로서의 '아오이토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人肌のぬくもりと、身の内の一番深いところに注がれた幸せ――事後の余韻に酔う
奇跡の力の影響はあるだろう。
でも、この幸せの本質は、愛する人と心の底から繋がったからだとわかる。
もう……力なんて関係ない。
私は彼を心の底より愛している。
彼に、愛されている。

피부의 온기와, 몸 속 제일 깊은 곳에 흘러들어온 행복 ㅡㅡ 사후의 여운에 취한다.
기적의 힘의 영향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행복의 본질은,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의 밑바닥부터 이어졌기 때문이라는걸 안다.
이제, 힘 같은건 상관없다.
나는 그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사랑하고 있다.
그에게 사랑받고 있다.

'아카리'는 주인공적인 성격도 띠지만 공략되는 히로인으로서의 성격도 동시에 갖고 있는 양면성을 보입니다. 그래서 작중에서는 '주인공'으로서의 아카리, '히로인'으로서의 아카리, 두 시점에서 같은 이야기를 바라봅니다. 본작은 논리성이 갖춰진 새로운 게임의 시작을 위해 냉정하게 '주인공'인 아카리의 퇴장을 전제하고, 이는 충분히 타당한 결론이므로 플레이어가 바라볼 때는 만족도가 높은 결말입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배제된 이후의, 이야기로서의 '아오이토리'에 있는 리츠와 아카리에게는 '파랑새'를 잡지 못 한, 만족할 수 없는 결말이라는 것이 한 시점에서는 육체적인 연결(H씬)을 주로, 한 시점에서는 내면적인 서술을 통해 서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그려내며 이야기의 '독자'들에게 호소되었습니다. 

『이 세계를 좋아한다』

작중에서는 게임으로서의 결말을 선택해도 시간은 미래로 흐르지 않고 되돌아오며, 종장의 '트루 루트'와 '일방적인 선택지'를 골랐을 때에서야 시간이 미래로 흘러갑니다. 이 선택지는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리츠와 아카리가 선택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의미심장한 포인트죠. 아무튼 이는 본작의 결말이 이야기로서의 아오이토리를 긍정하는 것임과 동시에 엔터테인먼트로써의 야겜을 즐겨달라는 작가의 메세지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결말은 편의적이고, 개연성이 부족해보이기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건 소재보다는 두 캐릭터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임이 전해지기는 하잖아요?

 

'트루 루트' 또한 '논리정연한 야겜'보다는 '즐길 수 있는 이야기' 쪽으로 편향적인 시각을 강제한다는 느낌은 있지만 전작 '아마츠츠미'와 비교해보면, 왜 굳이 두 가지 결말을 준비했냐 하는 질문에 대한 납득할만 한 이유는 제시했고, 게임적으로도 만족스러운 루트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참작을 해 주고 싶네요. 다만 이런 이야기는 전작 '아마츠츠미'와 마찬가지로 독자의 감상에 의존한다는게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죠. 저도 결말에 대한 끝없는 의심과 합리화를 하는데, 이런 감상은 자연스러운 감상에서 나오는 이야기 자체의 감동과는 질이 조금 다르죠. 그 부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일 수 없는 독자들도 많을겁니다.

 

정리하자면, 본작 '아오이토리'는 전작 '아마츠츠미'를 답습한 분위기 게임-주요한 사건이 발생하는 인과가 불연속성을 띠는 문제를 작품 내부에 갖춰진 논리성이 아닌 독자의 감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있는-이라는 한계를 가집니다. 하지만 본작은 전작에 비해 일관성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덕분에 캐러게의 한계를 넘어 플레이어와 독자의 행복을 양립시키면서 작품의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그 메세지는 전작의 결점을 변호하기도 하고, 기획자의 야겜관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닮은 게임에서도 사뭇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건 텍스트 야겜이 주는 묘미가 아닐까 싶네요.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빛 러브리체  (1) 2022.02.03
쿠나도 국기  (0) 2021.12.30
창작그녀의 연애공식  (0) 2021.11.30
섬강의 클라리어스  (0) 2021.11.26
벚꽃의 구름*스칼렛의 사랑  (2) 202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