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타이틀 : GIGA-BALDRHEAD / 閃鋼のクラリアス
평점 : 1/10
* Pros & Cons
+
- 좋은 재료만 가지고서는 좋은 요리를 만들 수는 없다
참 역설적이게도, 규모가 있는 에로게 메이커 중에서는 플레이어블한 경험을 주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에우슈리, 앨리스, 얼마 전에 해산한 캬라, 이노센트 그레이 같은 메이커들이 생각나네요. 이런 메이커들은 한정된 탬플릿 속에서 돌고 도는 업계 생태계에 다양성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독특한 위상을 가집니다. 야겜 업계가 수십년동안 한두개의 메뉴, 그리고 교묘한 착시로 연명은 해 왔지만 그동안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하락세를 걷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몇몇 메이커들의 참신한 시도는 다양한 유저층을 포섭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죠.
본작의 제작사인 발더헤드 또한 20년 넘게 야겜판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왔습니다. 듀얼 세이버, 마테리얼 브레이브 같은 횡스크롤 ADV 게임이나 발더 시리즈로 대표되는 메카 액션 ADV가 있는데, 클래식한 ADV 야겜들과 비슷한 탬플릿을 취하면서도, 플레이어가 좀 더 능동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게끔 하여 좀 더 게임같은 구조를 가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게임'에 가까운 물건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주로 시나리오라이터의 역량이 중요시되는 일반적인 비주얼 노블이나 ADV 야겜보다는 게임에 특유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레벨 디자인의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스토리를 재밌게 쓰는 시나리오라이터도 필요하지만,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보다는 유능한 프로듀서와 디자이너가 필요하다는 거죠. 발더 시리즈의 성공 속에도 프로듀서의 능력 또한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유저들은 별로 없을겁니다.
하지만 본작, 섬강의 클라리어스의 정체성은, 본작이 보여주는 강점은 뭐라고 해야 할 지, 딱히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시스템은 발더 시리즈의 그것들을 계승했다고 하지만, 게임은 시스템만으로 굴러가는 컨텐츠가 아니죠. 비슷하게 시스템만 따온 외전격 작품인 발더 스카이 제로는 발매 당시에 '껍데기(시스템)만 발더 시리즈' 라는 혹평을 들었지만, 본작에 비하면야 양반인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역동적이어야 할 장르의 게임이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레벨 디자인으로 게임의 잠재력을 다 깎아먹고, 포장만 예쁘게 한 선택지는 얼핏 보기에는 참신해 보이지만 내용물은 별 다를게 없죠. 시각화된 패러미터는 게임적으로 쓸모가 있다는게 다행이긴 하지만, 지루한 레벨 디자인은 그마저도 의미를 퇴색시키는 듯 보입니다. 캐릭터 비주얼도 예쁘고, 전투 연출이나 시스템은 발더 시리즈의 후속작 다운 명불허전, 무난무난한 시나리오. 본작에 있는 요소들을 따로 떼 놓고 보면 딱히 나쁜 점은 보이지 않지만, 아쉽게도 그걸 적절하게 배치해서 좋은 게임으로 만들 구성력은 없었던 거에요. 실력 있는 요리사가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명감독이 좋은 스포츠 팀을 만들듯이 좋은 파츠가 다 모여 있어도 전체적인 판을 짜는 프로듀서의 능력이 부족하면 비단 본작 뿐만이 아니라 어떤 겜이든 망합니다.
아무튼 이번 작품은 많이 실망스럽지만 발더헤드가 앞으로도 야겜판에서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겜 만드는 수완이 없는건지 가챠겜도 망하고 이번 작품도 썩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아쿠아플러스처럼 양지로 갈 일도 없어보이니, 발더 시리즈 팬 입장에서는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비록 이제는 발더 없는 발더헤드가 됐지만 바로 제작팀이 해체됐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차기 시리즈에 대한 최소한의 열망은 있다고 봐야겠죠.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오이토리 (0) | 2021.12.20 |
---|---|
창작그녀의 연애공식 (0) | 2021.11.30 |
벚꽃의 구름*스칼렛의 사랑 (2) | 2020.10.05 |
Amenity's Life (0) | 2016.12.31 |
Re : LieF ~친애하는 당신에게~ (2) | 2016.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