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 4 / 10
- 네타 있음
I was born for you - 나는 당신을 위해 태어났다 - 나의 삶을 기꺼이 줄 수 있다는 말은 희생, 봉사, 헌신같은 숭고한 가치들이 녹아 있는 아름다운 말이다. 그리고, 허울 뿐인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타적인 삶'을 살기를 주창한 사람도 있고, 그러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있기는 했으니 사상을 아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유전자 레벨부터 새겨진 동물 고유의 '이기적인 삶'의 양식을 거부하기는 쉽지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실천적으로도, 이타적인 삶을 살기 위해 알아야 할 타인의 의식은 알기 쉬운 자신의 본능에 비해 파악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면, 이기는 그 자체가 그릇된 가치를 지녔고, 이타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가치를 지녔는가? 혹은, 이기는 이기를 낳고 이타는 이타를 낳는가? 이기와 이타의 경계는 늘 논쟁거리가 되는, 관점마다 다르게 보이는 양극단에 있는 가치들과 같이 애매하며, 순수한 이기, 순수한 이타, 이기에서 비롯되는 이타, 이타의 모습을 한 이기와 같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본작은 사생을 다루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본작의 다른 부분에 주목하는데, 그것은 다소 미약하지만 '그릇된 이타와 아름다운 이기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본작이 어렴풋이 답변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도적인 캐릭터메이킹으로부터 본작의 문답이 시작된다. 본작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양의 탈을 쓴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고팠던 부모, 낳음당한 아들, 딸을 살리고팠던 부모, 순수한 사랑을 하길 원하는 히로인, 언니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여동생. 그들은 제 나름의 이타를 행했음을 호소했고, 행하고 있음을 호소하지만 실상은 그보다 이기적일 수가 없다. 원치 않는 자식을 낳은 부모, 애정을 갈망하는 아들, 대신을 낳은 부모, 위안의 대상을 요구하는 히로인, 있을 곳을 잃고 싶지 않은 여동생. 죽음과 맞닥뜨리며 이타의 탈을 쓰게 된 이기 속에서 정언명령의 약속은 보잘것 없는 가치로 보인다. 그런 미완성의 인물 -이타를 가장한 이기- 들은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계기와 특별한 경험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완성된 인물로 발전해나간다는 것이 본작의 (아마도 곁가지적인) 이야기. 사실 본작의 분량은 아주 짤막하니만큼 그런 구조를 통해 다양한 측면에서 캐릭터와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풍부한 텍스트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중심축은 주인공과 히로인 메구리, 여동생 리아의 3명에게 맞추어져 있다.
주인공 커플의 이야기에서는 상기한 주제인 이타와 이기의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주인공은 메구리를 애정의 공급원으로써 요구했고, 메구리는 위안의 대상으로써 주인공을 요구해왔다. 서로를 몰랐던 두 명의 진심은 죽음 앞에서 마주치고, 멈춰 있던 두 명의 관계 -이기를 위한 이타- 는 새로운 국면 -이기에서 시작되는 이타- 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두 명의 이야기는 마치 벚꽃의 아름다움과, 개화와 낙화간의 짧은 순간을 그리고자 하는 것 처럼 보인다. 반면, 두 명의 이야기 속에 리아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그녀의 이야기는 벚꽃보다는 꾸준히 성장하는 벚나무에 가깝다. 본작을 하나의 성장극으로 볼 수 있다면 (본작에서는 아쉽게도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는) 독립된 이야기로 진행되는 리아의 성장극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진정한 이타는 무엇인가' , 그리고 그녀 자신이 자신의 의지로 추구해야 할 의미를 찾아가는, 성장의 가치를 내포한다. I was born for Meguri라는 자세를 고집하던 그녀의 진심은 어떠한 것이었고, 그녀가 어떻게 I was born for Ria 라는 태도를 갖게 되었는가? 더 이상 생명의 스페어가 아님을 인정하고, 나는 당신을 위해 태어난게 아닌 것을 알아가는 그 과정을 그리는 것, 아름다운 이기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이야기, 타이틀과 리아의 이야기가 지니는 의미는 그렇게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성장극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본작의 초점이 리아에게 맞춰져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
의미를 유추해나가는 과정을 제공한다는 점은 만족스럽지만, 작품적으로 만족스럽냐 하면, 사실 설정부터 꽝이었던고로 이야기 자체에 집중은 잘 되지 않는다. 작위성 짙은 병, 설정과는 달리 태연하게 학원 생활을 보내는 일상, 불법 심장 이식을 꾀하는 모습, 연출이라는 무기를 포기하고 죽음의 어두운 부분은 텍스트로만 제공되는 점, 그 부분은 蜥蜴の尻尾切り를 본받을 필요가 있을 정도로. 아무래도 순애 야껨은 연출마저 순수해야 한다는 망상이 있는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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