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타 있음
마쿠라에이교(枕営業, 베개 영업)라는 단어가 있다. 인지도가 낮은 연예인이나 좋은 배역을 따 내고 싶은 여배우들이 자의로 스폰서(주로 영향력 있는 스탭이나 기획자, 미디어 기업의 중역을 대상으로)에게 접근하여 관계를 가진 후 거래를 하거나,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지 않다면 적절한 시기에 푸쉬를 받지 못 하면 대중들에게 빠르게 잊혀지는 연예계 특성 상 인지도 상승을 미끼로, 타의로 관계를 요구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이를 '베개 영업을 한다' 라고 일컫는다. 한국말로는 한 때 큰 파장이 일어서 익히 알려진, 성상납이라는 단어와 상통한다. 일본어쪽은 자발적인 행위로 이해되기 쉬운 단어라면, 한국어 쪽은 피동적으로 이해되기 쉬울 것이다. 어찌 되었든, 행위의 본질이 성을 거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는 점은 동일하다.
히로인은 데뷔한 지가 1년이나 되었지만 일거리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무명의 아이돌으로, 마지막에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자는 심정으로 스폰서들에게 스스로 몸을 내던지게 되면서 본작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즉, 베개 영업을 하는 히로인, 베개 영업 하는 이야기. 본작을 요약하면 그 정도의 이야기.
설정만 보면 흔한 누키게나 삼류 야겜처럼 보이지만, 본작의 소재 자체의 특성을 시스템과 구성을 통해 표현하고, 캐릭터와 이야기에 잘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 가장 돋보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연예계에 관련된 추잡스런 소재는 야겜에서 사용될법 한 소재이므로 가끔 등장하는 편이고, 히로인이 타락한다는 소재도 누키게의 흔한 클리셰 중의 하나 정도로 취급되지만, 본작은 두 요소를 절묘하게 배합해냈다. 즉, 본작은 베개 영업 하다가 히로인이 타락하고 끝나는 누키겜스러운 이야기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다소 불완전하더라도, 레이나가 왜 타락하고, 파멸하는지를 유심히 지켜보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다양하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 놓는 것이 본작의 목적에 가깝다.
레이나라는 캐릭터는 이제까지 있었던 삼류 야겜들에 등장했던 히로인들이 그랬듯이 그저 섹스로 인해 타락하는 그런 맥락없는 히로인은 아니다. 그녀에게 섹스란 수단일 뿐, 그로 인해 그녀의 의지가 바뀌지는 않으며, 그녀의 목적은 그녀 나름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 있다. 그러면 무엇이 그녀를 파멸에 이르게끔 한 것일까? 그녀의 자존심이 무너진 이유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베개 영업이라는 행위가 근절되어야 할 악습이었기에? 아니면 그녀가 목표를 잘못 설정했기에? 본작은 이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은 내놓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가 망가지는 과정과 결과를 그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플레이어가 이를 명확하게 인지하기 위해서는 본작의 시스템 상, 2회 플레이해야 한다.)
해석의 하이라이트는 본작의 ED이다. 본작의 ED는 하나 뿐이지만, 스탭 롤을 유심히 지켜보면 ED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느 정도 유추를 할 수 있지만 명확한 답이 주어지지는 않았으므로, 플레이어의 해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흥미로운 결말 구조를 볼 수 있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결말에 대해 개인적 해석을 내 놓자면, 그녀는 자기가 믿는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기만에 빠진 것이지, 더 이상 비인간적인 길을 택할 이유가 없어졌다. 소박한 미래를 그린다는 일말의 행복마저 박살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녀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본능에 충실한, 이성이 아닌 감정이 앞서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회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해석 하에서는, 그녀는 가장 인간답게 다시 태어나지만, 동시에 인간으로서 파멸도 동시에 맞게 된다. 그녀의 본질이 소멸된 것이다.
물론 개인적 해석이고, 언급했듯이 명확한 답은 없으므로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그 해석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해석일 것이다.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본작은 전혀 교훈적이지도 않고, 그녀에게 연민도 할 수 없는, 그저 씁쓸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본작에는 명확한 메세지도 없고, 암울한 현실과, 최악의 결말만이 기다리고 있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만으로 본작을 똥겜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위에서 말했듯이, 본작의 주된 목적은 그녀가 겪는 비극과 그녀의 심리를 읽어나가는 데 있으며, 이에 있어서 부족한 점은 다소 있지만 부실한 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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