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타이틀 : Purple / アマツツミ
발매일 : 16.07.29
장르 : ADV
원화:코쿠, 츠키모리 히로
시나리오:미카게(코코로 공통, 호타루), 유


평점 : 3 / 10



* 네타 없음




2010년대 이후, 야껨의 트렌드는 점차 바뀌어왔다. 야껨 브랜드들은 대체로 기존의 방대하던 텍스트량을 줄이는 대신 연출을 강화하는 선택을 했다. 인간의 사고는 축적된 경험에 따를 뿐 딱히 진보하지 않는 반면, 기술은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이는 당연한 선택이기도 할 것이다. 10년 전 게임에서 볼 수 있었던 원화, 효과, BGM 등의 연출과 최근에 발매되고 있는 게임에 수록된 그것들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극명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야껨이 지닌 최대의 강점은, 종이 책을 보며 모든 상황을 머릿 속으로 상상해야 했던 독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준 점이다. 캐릭터의 외형과 반응은 이미지로써 명확하게 제시되고, 각 장면들에는 적절한 BGM이 곁들여져 있어서 귀가 지루하지 않다. 극적인 장면들에는 따로 준비된 CG를 도입하여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연출을 강화한다는 것은 야껨이 지니는 가능성을 제대로 짚고 있는 현명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런 텍스트 디플레이션 트렌드에는 장단점이 있다. 작품 내에 등장하는 텍스트가 줄어드는 만큼 세세한 묘사를 하기 어렵게 된다. 더군다나 제작자들의 입장에서 야껨은 잘 팔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기도 하고, 어디까지나 야껨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야껨이므로, 유저들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잡다한 일상 이벤트나 H신이 삽입되기에 어느 정도 군살이 불가결하게 붙어버리기 마련이다. 부족한 텍스트량은 더욱 부족해지고, 결국 캐릭터와 사건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뒷전이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독자를 납득시키는 선에서 경제적인 서사와 최소의 복선을 활용하여 최대의 카타르시스를 낳는 방법도 있겠으나, 능력이 출중한 작가가 아니라면 이는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반면, 독자들은 줄어든 텍스트량 덕분에 피로감을 보다 덜 느끼게 된다. 여전히 소설 몇 권 분량의 텍스트가 담겨 있기는 하지만, 최근에 발매되고 있는 작품들에 수록된 텍스트량은 대체로 텍스트 인플레이션 유행 하에서 제작된 게임에 수록된 텍스트의 약 1/2, 약 1~2mb 정도이기에,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접근하기에 부담스럽지도 않고, 이야기의 속도감도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 연출 강화로의 트렌드 이행은 작품에 등장하는 각 장면들에 충분한 호소력을 제공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잘 몰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언뜻 보면 장단점 모두 야껨만이 가지는 특징을 강화하고 독자의 편의를 도모하는 좋은 돌파구로 보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야기의 속은 없고 연출이라는 껍데기만 있는 작품도 충분히 발매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평가의 기준은 다양하므로 그런 작품들을 '나쁜 작품'이라 마냥 매도할 수는 없지만, '좋은 작품' 이라고는 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모든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에서 스토리텔링이 벽돌이라고 한다면 연출은 풀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긴밀한 관계에 있지만, 서로가 다른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껨도 마찬가지로, 연출이 부족한 작품은 독자들의 흥미와 감동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이야기가 부족한 작품은 스토리텔링을 즐기는 독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



야껨들은 다양한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데, '스토리 게임' , '모에 게임' , '캐릭터 게임' 과 같은 통상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분류들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최근, 야껨 시장의 트렌드 변화에 따라 '분위기 게임' 이라는 장르 분류를 새로이 도입하려는 목소리가 있다. '분위기 게임' 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해당되는 작품들은 이야기 자체의 논리적 인과성이 다소 결여되어 있고, 깊이 있는 묘사가 지양되고, 작품 특유의 분위기(공포, 신비, 우울함 등)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분위기 게임' 이라는 새로운 분류가 주창될 수 있었던 까닭은,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수준이 높아진 연출력의 공이 크며, '분위기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 텍스트 디플레이션과 맞물려 연출력에 많은 부분을 의존했기 때문이다. 가령, 히로인이 투신하려 하는 장면이 있다고 하자. 텍스트로 짜여진 매체에서 작가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촘촘한 복선의 투입과 제대로 된 인과의 성립, 내면 심리의 해체를 통해 캐릭터가 죽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충분한 개연성을 제공할 수 있다. 아니면, 정교한 인과를 맞추기 위한 노력을 덜어내는 대신 각종 연출을 통해 해당 장면을 부각시킨다. 노을이 지는 시간의 텅 빈 옥상의 적막함과 난간 앞에 선 히로인의 뒷모습을 제시하며 애련한 BGM을 삽입하고, 연출에 알맞는 극적인 대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츠유키사쿠라' 와 같은 분위기 게임들은 후자의 방법을 선택했다. '분위기 게임'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탐탁치 않은 행보이지만, 의외로, 유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준 바가 있다.



'아마츠츠미' 또한, 유저들의 감성을 공략하는 분위기 게임들이 속속이 등장하는 야껨 시장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의 분위기 게임으로써 편승한 듯 하다. 분위기 게임에 유저들이 호의를 보였던 것을 보면 분위기 게임이 단점만 가득한 게임까지는 아니지만, 장단점은 뚜렷하게 보인다. 각 캐릭터들의 매력은 각각의 외양과 속성, 일상 이벤트의 대화를 통해 획득되며, 성우들의 연기력에는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캐릭터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매력인 내면을 진솔하게 표현하는데는 실패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본작에서 제시되는 내면 묘사는 본작이 다루는 소재가 판타지적 소재라는 것과 무관하게 생략된 부분이 많았다. 이 캐릭터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이 별로 제시되어 있지 않고, 섬세하게 다루지도 않는다. 또한, 간접적이면서도 유저들이 쉽게 깨달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대신, 원인이 생략된 행위의 결과나 대사로 언급하는 것과 같이, 직접적인 단서를 통해 유저들이 받아들이기를 요구한다. 



사건과 일상 사이의 템포를 조절하는 능력과 간결하게 문장을 쓰는 종합적인 필력은 미카게라는 시나리오라이터에게 가장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고, 본작에서도 필력에서 아쉬운 부분은 딱히 없었지만, H신의 타이밍은 하나같이 끔찍하다는 평을 하고 싶다. 야껨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소양 중 하나가 시나리오와 에로가 하나의 게임으로서 종합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유리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지만, 본작의 H신은 시나리오와 유리되어 있음은 물론, 이야기의 템포를 끊는 주역이다. 디렉터가 제작의도를 언급했을 때, 전작 '크로노클록'이 H신이 부족했고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 하다는 비평을 접했고, 본작에서는 충분히 H신을 추가하겠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반영된 결과물은 완전히 과유불급이 되어 버렸다. 






구성과 이야기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필자가 본작을 분위기 게임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본작은 위와 같이 탈락형 선택지 구조를 채택했는데, 각 파생 루트는 묘사 부족에 따른 '캐릭터의 부재' 와 편의주의적인 전개로 인해 인상 깊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1) , 이야기는 최종장에 이르러 통합되는 듯 보이지만, 캐릭터들은 통합되지 못 하고 하나의 네타로 전락한다. 어설픈 판타지적 마무리는 전작 크로노클록에 이어서 여전히 등장한다. 전작과 차별되는 특유의 분위기가 유저들을 매료시킬 만 하지만, '캐릭터의 부재'는 끝내 해결되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분위기는 이야기의 논리적인 결점을 해결해주는 수단이 아니다. Non-판타지에 비해 판타지에는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 편인데, 본작이 제시하는 소재에 대한 정의는 느슨하기 때문에 일부 플레이어로 하여금 너무나 많은 if의 가능성을 제기토록 하고, 본작만으로는 그 if의 가능성에 대한 일리 있는 답변을 제시하지 못 한다. 여운과는 다른 개념으로, 사실 '가능성'보다는 '의심'에 가깝다. 위의 예를 재활용해보자면, 히로인이 투신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논리적 무모순성에 의거한 필연에 가까운 개연으로 제시했다면, 투신의 이유에 대해 묻는 독자보다는 히로인에게 공감하거나, 그 이후의 상황을 그려보는 여운에 잠기는 쪽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면, 개연성이 없다면, 작품 이후를 보려고 하기 보다는 작품 내를 돌아보며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쪽이 많을 것이다.(아무튼, 예시가 추리 소설이 아니라고 가정하고) 이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러운 독해 기능이 마비되고 설정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설정에 주목하기를 바라는 일부의 작품을 제외하면, 주제보다 설정에 과도하게 집착하도록 유도할 이유가 있을까? 효용론적 관점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의심의 뿌리는 가능한 한 미리 제거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본작은 의심을 뿌리뽑기보다는 연출을 통한 분위기 조성을 통해 의심을 안고 가는 쪽을 택했다. 아쉽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는 것은, 근래에는 이 정도로 감상적인 작품도 드물다는 것이다. 상황 조성과 문장과 연출의 어우러짐만으로 충분히 독자들의 감성의 끈을 당겼고, 대중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 



아마츠츠미의 강점, 그리고 분위기 게임이 가지는 강점은 플레이어의 감성을 자극하는 무기가 아닐까 싶다. 즉, 작가의 의도대로 독자들이 작품에 센티멘탈한 태도로 접근을 해본다면 본작 및 분위기 게임은 충분히 즐길만 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비판적 태도를 내려 놓고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감상 방법의 하나이며, 감성적인 작품을 찾고 있는 플레이어에게는 충분히 본작을 추천해줄 만 하다. 반면, 엄격한 설정에 따르는 체계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분위기 게임이 가지는 무기는 다른 가치를 희생해서 얻어낸 것인데, 희생된 가치는 그런 독자들이 찾고 있는 것들이므로, 본작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아마 평범한 감상주의 작품 중의 하나로 기억되지 않을까.












----------------------------------------


1) 미카게가 담당한 부분은 코코로 본론, 호타루 본론 파트이며 다른 파트는 다른 시나리오라이터가 담당했습니다. 그렇기에, 쿄코, 마나 본론, 파생 루트를 유심히 살펴보면 야리토리(대화의 주고받음)의 양상과 분위기가 초반과 후반과는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편의주의적 전개는 작품의 전반적인 문제이지만, 개별 루트에서 유독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Re : LieF ~친애하는 당신에게~  (2) 2016.11.07
생명의 스페어  (0) 2016.09.11
손때 투성이 천사  (0) 2016.07.31
판도라의 꿈 / 고전 모에게  (0) 2016.07.01
플라네타리안  (0) 201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