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타이틀 : ニトロプラス / みにくいモジカの子

 

평점 : 3/10

 

사람의 마음이 문자로 떠오르는 능력-모지카-을 갖고 있는 주인공 타네자키 스테루는 능력의 부작용과, 자신의 추한 얼굴을 드러낼 때 보게 되는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들에 공포를 느끼고, 자신의 세계를 땅 아래 120cm로 제한한다. '모지카'의 연출은 스테루의 모지카 능력과 좁은 세계를 근거로 구성된다. 제한된 시야와 아래로 치우쳐진 구도, 불쾌한 이명, 배경을 화면 가득하게 덮는 마음의 소리, 선택지의 방식. '아자나엘', '토토노' 등의 괴작(?) 제작자로 명성을 얻은 시모쿠라 바이오의 게임들 중에서도 연출적으로는 가장 실험적인 시도를 했던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 '모지카'만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포인트는 마음의 소리가 배경 텍스트로 나타난다는 연출과 플레이어가 직접 모지카 능력의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루트 분기를 선택하는 선택지가 된다는 시스템이다. 플레이 전에 게임 소개 동영상은 보지 않아서 마음의 소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연출되는지는 몰랐는데, 직접 플레이하면서 엄청난 악의와 멸시를 화면을 가득 채운 텍스트로 접해보니, 히로인 캐릭터의 경멸하는 시선과, 스테루가 느꼈을 고통이 화면을 넘어와서 마음에 꽂히는듯 한 충격이 전해졌다. 

 

배경 한가득 드러나는 마음의 소리

선택지로 기능하는 모지카 능력은 스테루에게도 골칫거리지만, 이 능력으로 분기를 선택해야 하는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모지카는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1회차 플레이때는 기능의 존재도 몰라서 원치 않는 엔딩을 보게 됐고, 5회차 이후에는 게임의 높은 난이도와 시간적 제약 때문에 공략을 참고하기로 했다. 각 히로인의 개별 루트 진입 자체는 선택지가 직관적으로 알기 쉽게 배치가 되어 있어서 어느 지점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해당 히로인 분기로 진입할 수 있을 지 대강 파악할 수 있지만, 트루 루트로 진입하기 위한 모든 조건을 달성하고, 트루 루트로 진입하는 과정은 꽤 난이도가 있었다.

모지카 모드. 선택의 방법은 시선을 올리거나, 올리지 않거나.

 

시모쿠라 바이오의 강점은 이러한 창의적인 시스템을 구상하고 구현하는데만 있는게 아니라, 이 시스템을 하나의 '게임'으로 빚어낼 수 있는 충실한 프로듀서적 마인드에 있다. '모지카'에서도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소리를 보는 능력, 모지카라는 설정은 게임의 시스템으로 내장되면서도 단순히 이야기에서 소비되는 설정으로 그치지 않는다. 시스템으로 동화된 설정은 이야기의 주요한 소재가 될 뿐만 아니라 게임의 구조를 형성하고, 캐릭터의 행동 양식을 결정하고, 테마를 강조하는 장치로 사용되는 등, 폭넓게 활용되며 게임으로서의 '모지카'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즉, '모지카'의 시스템은 게임이 게임으로 성립하는 당위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신선하게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그 '게임적인' 존재 의의를 충분히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지카 시스템이 '토토노'와 같이 '게임적인 테마'를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고, 시모쿠라 바이오의 고질적인 단점인 '이야기의 빈약함'이 작품의 발목을 잡는다는 문제는 여전히 부각되어 보인다. 

 

 

* 스포일러 O

 

- 게임으로서의 '모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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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선택지에는 효용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 효용이 클수록 좋은 선택지로 기능할 수 있다. 효용이 작은 선택지는 게임의 진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거나 미미한 영향을 주는 선택지이다. 야겜에서는 히로인의 복장을 선택한다거나, 일상 이벤트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선택과 같은 것들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선택지들과 마주한 플레이어들은 이 선택지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걸 쉽게 직감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호감도 패러미터에 거의 영향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효용이 작은 선택지들도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무의미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한 게임의 텍스트 분량은 한정되어 있기에 경제성 측면에서 그런 선택지들은 최소한으로 배치될 필요가 있다. 반면 효용이 큰 선택지는 게임의 진행에 큰 영향을 주는 '치명적인' 선택지들이다. 좋은 방식은 아니지만, 캐릭터 게임에서 볼 수 있는, 히로인의 패널을 직접 선택해서 개별 루트로 진입하는 선택지들이 그런 선택지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는 있다. 좋은 선택지들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면서 즐거운 체험을 하는 것이 게임이라는 매체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텍스트 야겜의 목적은 '주인공'이 '히로인'을 '공략'하는 것이고, 플레이어가 조작이 가능한 시스템은 대개의 경우 선택지밖에 없으므로, 주인공과 플레이어의 시점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좋은 선택지들이 배치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모지카'의 개별 루트 단계의 선택지들은 효용이 높고,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선택지의 기능과 의미를 알기 쉽도록 배치되어 있다. 모지카 시스템은 텍스트로 주어지는 선택지들을 고를 때보다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끔 하며, 문자로 나타나는 감정은 특정한 선택이 개별 루트 진입 여부의 근거가 되는 이유를 적절히 제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특정 히로인과 시선을 마주치면 해당하는 히로인의 감정을 문자로 접하게 되면서 주인공의 감정이 흔들리고 해당 히로인의 감정에 강하게 지배되어 개별 루트로 진입하게 되지만,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면 그녀들과의 접점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모지카 시스템의 연출은 '미리 준비된 장소'나, '미리 준비된 텍스트'를 고르게 하는 것이 아닌,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사이의 선택, 즉, 직접적인 행동의 유무로 선택을 하게끔 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게임과 시스템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전능감을 심어주며, 그렇기에 이 모지카를 통해 플레이어 시점과 주인공 시점이 정확히 일치하는 상태로 개별 루트에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와 주인공의 감정과, 바라는 결말은 서로 상이함을 개별 루트를 거치면서 알게 된다. 야겜 플레이어의 목표는 주체적으로 히로인과의 사랑을 그리고 그녀와 공감하고 공존하며 미래를 그리는 삶을 체험하는 것이지만, 주인공 스테루는 추한 외모와 타인의 시선에 의한 감정의 폭력으로 인해 작중에서 명확한 자아 성립에 실패한 존재로 그려지며, 특히 자아 형성 장애로 인한 다양한 감정의 부재 속에서도 '공감 능력'의 부재는 플레이어와 주인공이 동화될 수 없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작중에서 스테루가 바라는 것은 플레이어의 희망사항인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에게 '사랑받는 것'이며, 스테루가 저지르는 일방적인 행동은 오직 그녀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오직 본능적 욕구만 있는 행동양식은 플레이어가 추구하는 '공감'을 전제로 한 복잡하고 섬세한 사랑과는 거리가 있으며, 플레이어는 스테루가, 주인공에게 요구하게 되는 루트 계획을 능동적으로 실천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플레이어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없는 주인공의 실체를 알게 되는 시점에서 루트 진입 시점에서 획득된 전능감은 사라질 위기를 맞고, 모든 이야기가 플레이어가 아닌 다른 누군가(나루코)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시점에서 전능감은 산산이 부서진다. 개별 루트는 그렇게, 플레이어의 기대와 환상을 깨뜨리는 이야기가 반복되어 플레이어와 주인공 사이의 결합을 유리시키고, 또한 반복적인 실패는 플레이어에게 압도적인 무력감을 갖게끔 한다. 

 

트루 루트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플레이어와 주인공은 동화되지 않고, 플레이어의 역할은 관찰자로, 스테루의 역할은 주인공으로 고정된다. 이 '시점의 분리'와 함께 '어려운 게임'이 시작된다. 플레이어가 모지카 능력의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명목상의 선택이고, 실질적인 선택은 더이상 플레이어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테루의 선택만이 유의미해질 뿐이다. 실제로 트루 루트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어려운 선택지들에 직면하게 되는데, 개별 루트 진입을 위해서 단순히 시선을 마주치거나 회피하거나를 선택했던것과 달리 몇 번 시선을 회피하거나, 몇 번째에 시선을 마주쳐야 한다거나 하는 복잡한 과정이 추가된다. 올 클리어 이후에나 선택지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선택지들은 직관적이지 않으며, 플레이어와 스테루가 일치하지 않음을 명백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적인 게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토토노'가 어느 정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시스템이 야겜의 구조를 관통하며 플레이어에게 호소하는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만, 본작에서는 그러한 메세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모지카 시스템이 게임의 기틀을 형성하기는 하지만, 이 모지카 시스템과 '모지카'라는 작품간의 연결을 통해 어떤 '게임적인 테마'를 전달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 했다는 것이 본작의 한계가 아닐까. 'YU-NO' , '세컨드 노벨'과 같이 게임적인 테마와 이야기적인 테마가 공존하는 좋은 작품들은 유저들로 하여금 다양한 감상을 낳도록 유도하지만, '모지카'에는 이야기적인 테마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스템을 통한 이야기적 테마의 표현이라는 맹목적인 목표에만 매몰된 결과로 빚어진 결과물일 뿐이며, 캐릭터와 이야기의 부재는 그 테마의 진정성마저 의심케 한다. '모지카'의 올 클리어 이후에 남은 것은 겉보기에는 신선한 시스템과, 평범한 운명론적 이야기와, 본작의 테마인 실존에 대한 파편적 사유에 대한 여지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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