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타이 프리즌

감상2022. 2. 20. 00:21

 

제작사/타이틀 : Qruppo / ヘンタイ・プリズン

 

평점 : 8/10

 

* 스포일러 O

 

地面を踏みしめるたび、イチモツが顔を振った。
全裸で走ったことのある人間は、誰もが知っているだろう。
男根が太ももに叩きつけられる音と、コンクリートを蹴る音が、夜の街に反響する。

지면을 밟을 때, 자지가 좌우로 흔들렸다.
나체로 달린 적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을 것이다.
남근이 허벅지에 부딪히는 소리와, 콘크리트를 차는 소리가 밤의 거리에 울려퍼진다.

유저 평가가 좋아보여서 선택한 겜이었지만, 쿠룻포라는 제작사와 본작 '헨타이 프리즌-헨프리-'에 대한 개인적인 첫인상은 좋지만은 않았어요. 이전에 들어도 못 본 생판 처음 보는 제작사에, 이전 작품들은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은데 타이틀명이 3류 누키게에서나 볼법한 네이밍 센스였죠. 타이틀 표지도 정말 과감하고 발칙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반적인 야겜 표지는 히로인들이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는 구도로 그려지거든요. 그리고 다른 매체, 영화나 라이트노벨 같은 경우에는 '내'가 아닌 인물이 주인공이 되므로 모든 등장인물들을 그려넣을 수 있죠. 반면 남성향 야겜의 주인공은 미디어 특성 상 플레이어로 상정되어 있기에, 사실 주인공이 그려져서는 안 되는 겁니다. 아니면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구도로 그려지던가요. 그런데 '헨프리'의 표지는 그런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플레이어를 도발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플레이어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히로인들. 유일하게 플레이어를 바라보고 있는 말끔하게 삭발한,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진 주인공. 의도를 알 수 없는 유일한 시선과 마주치는 경험은 이색적이지만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또한 게임을 시작하고 나서 위에 인용된 첫 문장을 읽었을 때는 겜을 정말 잘못 고른걸까, 잡스러운 누키게가 이 시대의 주류 장르가 되어버린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런데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하다 보면 새로운 도전을 꺼리게 되고 익숙함에 물들어갈 뿐이죠. 아무래도 저 또한 오랫동안 야겜을 접해오면서 기존의 탬플릿에 반하는 작품들을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생긴게 아닐까 싶어요. 그 나쁜 첫인상이라는 심리를 조금 파고들어보면, 사실은 기존의 경험들에만 근거한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시대의 바람직한 에로게이머가 되기 위해서 그런 태도에 대한 반성을 우선해보기로 했어요. 하지만 굳이 반성적인 태도와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본작을 접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아요. '헨프리'는 낯선 인상을 주면서 다가왔지만 금방 친숙해질 수 있는 특유의 친화력을 가지면서도 안정적인 게임의 구조를 보여주고, 종반에는 놀라운 관점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 익숙한 낯섦

 

들뢰즈는 익숙하지 않은, 사전에 생각하지 못 한 낯설은 상황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는 언제나 심적으로 '편안한' 상태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연함에서 비롯되어 마주치게 되는 낯선 것들은 우리에게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 본능적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작은 기존의 순애를 그리는 텍스트 야겜들이 가지는 특성들과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도입함으로써 기존의 야겜에 익숙한 플레이어들에게 끊임없이 낯섦에 직면하게끔 유도하고 있어요. 반사회성을 가진 주인공과 시작 시점에서 아무런 접점이 없는 히로인들이라는 설정도 낯설기는 하지만, 기존의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가장 낯선 점이라고 하면 시모네타와 패러디 개그로 성립되는 본작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헨프리'의 작중 에피소드들은 쉴새없이 뻔뻔하게 섹드립과 패러디 개그를 시전하는 주인공과 히로인, 서브 캐릭터, 모브 캐릭터들에 의해 전개됩니다. 감옥이라는 배경은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연상시키지만, 작중에서는 전반적으로, 심지어 진지함이 필요해보이는 장면에서도 캐릭터들간의, 섹드립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가볍고 유쾌한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지므로 무거운 분위기를 중화시킵니다. 물론 그런 점으로 인해서 작품이 가져야 할 진중함에 대한 우려나, 남발되는 패러디로 인한 작품의 오리지널리티 상실이라는 문제에서 비롯되는 불편함과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본작에서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결코 가벼운 방식으로 전개되거나, 파편화된 에피소드가 단순히 나열된 형태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헨프리'의 개별 루트는 주인공과 히로인이 연결되면서 에피소드가 발생하고, 에피소드들이 쌓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관계, 다른 캐릭터들간의 관계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그 일련의 과정을 선형적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시모네타 개그와 패러디들 또한 이야기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있구요. 이러한 점은 다른 좋은 야겜들이 보여주는 구조와 별반 다르지 않고, 본작의 낯선 정체성은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익숙한 편안함으로 수용됩니다.

 

다만 그 구조가 완전히 매끄럽다고 보기에는 어려운데, 본작에서는 편의주의적 전개가 주어진 문제의 극적인 해결을 위해 종종 사용되기 때문이에요. '헨프리'는 플레이어들이 작품의 분위기에 휩쓸려 심취하게 하는 그 극적인 전개 방식을 포기하지는 않지만, 그 대신 거부감이 덜하도록 하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본작의 텍스트 분량은 일반적인 풀프라이스 야겜의 2-3배 가까이 되고, (6MB 이상) 대부분의 분량을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 이벤트가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에피소드들만을 담백하게 제시하고, 그 에피소드를 통한 각 캐릭터의 묘사와,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의 연결점을 만드는 데 투자하고 있습니다. 주인공과 히로인의 관계 뿐만 아니라 주인공과 서브 캐릭터, 히로인과 서브 캐릭터, 심지어 모브 캐릭터와의 관계성까지도 아주 정성적으로 묘사되고 있어요. 덕분에 '헨프리'에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캐릭터는 거의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형적인 성격을 보여주리라 생각되는 캐릭터들은 흥미로운 뒷사정과,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이 캐릭터들이 자아내는 관계성은 본작의 감옥이라는 배경과 적절한 소재들의 도입과 맞물려, 자신의 강점을 드러내고 약점을 숨기려는 복잡한 이해관계-정치-속에서 성립됩니다. 하지만 그 관계성을 이어나가려다 보면 언제까지나 약점을 드러내지 않을 수는 없고, 위기에 직면하는 순간은 오게 됩니다. 여기서 캐릭터가 보여주는 의외의 면모-입체성-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작중에서 그려지는 편의적 전개는 이 캐릭터들의 입체성에 의존하도록 유도되며, 이야기와 캐릭터간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물론 이 방식으로 구조적 결함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지만, 플레이어들에게 대안이 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전개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그 접근법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긍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제안한다는건 독특한 맛이 있었어요. 그 일련의 프로세스는 가령,

 

'이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은 조금 뜬금없기는 한데, 작중에서는 이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입체적인 성격을 꾸준히 묘사해왔고, 사건이 발생하는 전제는 충분히 일리가 있어. 또한 이 사건에 엮인 캐릭터들의 성격과 사정을 근거로 해서 생각해보면, 캐릭터들은 그 상황에 마주했을 때 마땅히 그렇게 행동했을 것 같고, 결과 또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냥 눈속임 아니냐'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역량이나 정성에는 솔직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반적으로 한 작품에 너무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면 캐릭터성이 옅어지고, 불필요한 묘사가 늘어 이야기가 난잡해진다는 단점이 보이곤 하는데, '헨프리'의 캐릭터들은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 가져다 놓아도 이야기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고 생동감이 넘치도록 만들어져 있거든요. 그렇게 형성된 캐릭터 풀을 잘 활용해서 최적의 캐릭터 배치를 하고 있기도 하구요. 

 

한편, 캐릭터의 입체적인 성격과 복잡한 관계성을 묘사하는 과정은 한 루트의 이야기의 완결성을 보장하는 것 뿐만 아니라, 히로인들의 개별 루트, 그랜드 루트를 구성하는 좋은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본작은 선택지가 없는 대신, 특정 히로인을 선택하고, 그 히로인과 접점이 있는 캐릭터들과의 관계성이 그려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각 개별 루트가 진행됩니다. 상술한 넓은 캐릭터 풀을 잘 활용하다 보니 이야기의 스펙트럼도 넓어지는 효과가 있어서, 각 개별 루트는 활극이라는 비슷한 장르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다른 루트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인상은 전혀 들지 않죠. 또한 각 루트가 독립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제한된 캐릭터성으로 인한 이야기의 불완성'을 제시하는데서 게임이 앞으로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어요. 개별 루트의 이야기는 특정 히로인과 연결되고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형태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지만, 다음 루트를 진행하다 보면 이전 루트의 이야기는 완성되지 않았다는걸 알게 되거든요.

 

하지만 '헨프리'의 이야기는 치명적인 반전이 있다거나 사건의 진상을 찾는 목적성을 가지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에서, 그 미완성감이라는 것이 플레이어가 눈치채지 못 한, 작중에 의도적으로 숨겨져있는 단서같은 요소들을 찾음으로써 해소되는건 아니에요. '헨프리'는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관계성의 이야기라는 목적에 충실하고 있고, 본작 특유의 미완성감은 이전 루트에서는 캐릭터의 입체적인 성격과 성격의 근거를 알 수 없었기에,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제공되는 다음 루트들을 경험하고 있을때에야 이전 루트들의 에피소드에서 비어있던 부분들이 비로소 느껴지게 되는 것이죠. 즉,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들이 다시 이전 루트들을 넘나들면서 퍼즐을 맞춰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플레이어들은 직접 게임을 통합하면서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는, 바람직한 플레이 감각을 갖고 작품과 마주할 수 있죠. 

 

- 트루 루트

 

트루 루트, 본작에서는 그랜드 루트라고 하는 '최종장'의 역할은 이전의 이야기(루트)들을 완전하게 통합하고, 기존의 이야기와 테마를 해치지 않는 형태로 한발짝 더 나아간 이야기를 제시하여 플레이어들에게 작품의 테마를 강하게 상기시키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게임으로서 완성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동적인 이야기'와 '감동적인 게임'은 아주 상관관계가 없지는 않지만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아요.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단순히 모아놓았다고 해서 좋은 게임이 되지는 않고, 좋은 게임이라고 해서 꼭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야겜에서는 좋은 이야기를 쓰는 작가도 중요하지만, 게임다운 게임을 기획하고 구조를 가다듬을 수 있는 프로듀서와 디렉터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는 것입니다. 마에다 준 같은 프로듀서가 괜히 이 업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게 아니죠. 

 

트루 루트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는 특성을 가지는 장치입니다. 이런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캐릭터 게임 메이커들은 그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트루 루트 없이 개별 루트만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구요. 하지만 그 높은 리스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트루 루트를 단순히 마지막에 있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거나, '게임의 완성'이라는 트루 루트의 역할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는 있지만 부족한 역량으로 인해 트루 루트를 도입했다가 망한 게임이 한둘이 아니죠. 그런 게임들의 트루 루트를 들여다보면, 개별 루트의 히로인들은 잊혀지고, 이야기는 통합되지 않고,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나 설정을 늘어놓는 장이 되어있곤 합니다. 

 

그 나쁜 트루 루트의 예시 중에서도 최악은 하렘 루트에요. 물론 팬디스크나 누키게 장르의 겜들이 하렘 루트를 도입한다거나 온갖 성적 판타지를 보여준다던가 해서 극도로 상업성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일반적인 텍스트 기반의 야겜에서 하렘 루트라 하는 것은 절대로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소재였습니다. 하렘 루트가 배척되어야 하는 이유는, '실현이 불가능한 성적 판타지'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에요. 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어떠한 하찮은 소재라도 소재 자체는 잘못이 없습니다. 어떤 작품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무맹랑한 소재를 다룬다고 할지라도, 그 소재를 사용해서 개연성과 핍진성이 충족되는 이야기를 만들 수만 있다면 독자들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로서 성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하렘 루트는 그 타당성이 명확하지 않고, 이 히로인도 공략하고 싶고, 저 히로인도 공략하고 싶다는 플레이어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단순히 상업성을 추구한 결과로 도입된 것이기에 그 의도의 불순함에서 불쾌함을 느낄 수 밖에 없죠. 하렘 루트는 필연적으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망가뜨리는 최악의 소재였습니다. 하지만 '헨프리'는 하렘 루트를 트루 루트의 결말로 제시하고 있음에도 놀라울 만큼 불쾌함이 느껴지지 않는데, 하렘이라는 소재가 본작이 최종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목적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고 있고, 본작이 게임으로서 완성되기 위한 이야기의 연결성이 하렘에 의해 적절하게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본작의 트루 루트는 이전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완벽하게 합치면서 한발짝 더 나아간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주제와 메세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면서도, 트루 루트로 인해 개별 루트의 가치가 손상되지 않고, 히로인간의 우열도 나뉘어지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트루 루트를 그리고 있어요. '헨프리'의 트루 루트의 목적은 온전히 게임의 완성을 위한 것입니다. 하렘이라는 소재는 부차적인 요소이고, 일말의 위화감도 배제하기 위해 소재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언급되고 있죠. 이 정도로 야겜의 기본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작가는 이전에도 만나보기가 어려웠는데, 쇠락할대로 쇠락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2020년대 야겜판에서 이런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는건 대단한 행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헨프리'의 감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에로게에서만, 에로게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집대성한, 그야말로 혁신적인 작품이고 본작을 넘을 수 있는 작품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야겜이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가치, 구조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에, 이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 또한 반드시 만날 수 있으리라 하는 희망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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