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타이틀 : Laplacian / 白昼夢の青写真

발매일 : 20.09.25

장르 : ADV

원화 : 霜降、ぺれっと

시나리오 : 緒乃ワサビ

 

평점 : 8 / 10

 

 

* 네타 有

 

 

 

 

 

 

 

작가는 작법에 있어서 캐릭터가 먼저 있고 이야기(플롯)가 있느냐, 이야기가 먼저 있고 캐릭터가 있느냐 하는 문제를 고민합니다. 독자들은 작품을 읽고 나서 재밌는 이야기라거나, 캐릭터가 맘에 들었다고 느낍니다. 이야기와 캐릭터 뿐만 아니라 작품에서 어떤 점이 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하느냐, 어떤 점을 중점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는, 사실 각 요소들은 불가분의 관계죠. 이에 대해선 논의에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논의 대신에 본작과 관련된 포인트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캐릭터는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일까요? 제가 본작에서 가장 좋아하는 Case 2의 이야기에는 주인공 윌과 히로인 올리비아가 등장합니다. 윌, 올리비아와 저(플레이어)는 기본적으로 작중 캐릭터와 독자라는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Case 1, Case 3의 주인공과 히로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Case 1~3의 외부에 있는 캐릭터인 카이토와 요나기는 3가지 이야기를 꿈을 통해 체험하고 있고 내부의 캐릭터들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본작의 캐릭터에 대한 독특한 접근법은 플레이어와 외부 캐릭터, 내부 캐릭터 사이의 관계성을 조명하면서 시작됩니다.

 

"개성"이라고 불리는 것의 정체는 오늘까지의 기억의 집적에 불과하다.
무언가 판단을 내릴 때, 많은 사람은 과거의 경험을 단서로 한다.
과거의 데이터가 그 사람의 행동을 지배한다.
그리고 사람은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개성을 판정한다.
즉, 우리는 간접적으로 그 사람의 과거를 개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個性”と呼ばれているものの正体は、今日までの記憶の集積でしかない。
何かの判断を下すとき、多くの人は過去の経験を手がかりにする。
過去のデータがその人の行動を支配する。
そして人は、行動を見てその人の個性を判定する。
つまり我々は、間接的にその人の過去を個性だと定義している。

 

옴니버스식 구조로 전개되는 야겜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미소녀 만화경' 시리즈, '은색' 같은 게임들은 각 챕터마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교체되고, 색다른 주제를 표현하며 플레이어의 감동을 이끌어냅니다. 본작의 Case 1~3 또한 그러한 구성과 목적을 가지기는 하지만, 캐릭터의 관계성에 대한 정의 면에서는 사뭇 다른 형태를 보여줍니다. 

 

 

 

본작에서는 외부 이야기(Case 0), 외부 캐릭터(카이토, 요나기), 내부 이야기(Case 1~3), 내부 캐릭터(Case 1~3의 주인공 및 히로인)를 제시하고, 내부 이야기에 대해 '내부 이야기의 전개 및 캐릭터의 형성에는 외부 캐릭터의 기억 및 체험에 의존한다-사람의 과거(기억과 경험)를 개성(캐릭터)라고 정의하고 있다-' 라는 특별한 조건을 전제합니다. 즉, 자기 자신(의 데이터-기억-)이 자기 자신(이 재구성된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메타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이는 게임이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사실이며,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시점에서 플레이어는 어렴풋이 짐작만 하거나 추체험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기에 내부 이야기와 외부 이야기의 관계성을 정확하게 인지하지는 못 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작품을 즐기고 얻을 수 있는 순수한 감상과 구조적 해석을 통한, 이야기의 게임으로서의 재해석이 순차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3가지의 내부 이야기는 Laplacian社의 과거 발매작 속의 캐릭터와 이야기의 탬플릿을 플레이어의 취향에 맞도록 개선된 형태로 재조합, 각색한 결과물입니다. 아무 정보가 없는 게임 초반에는 플레이어와 외부 캐릭터는 동시에, 내부 이야기를 단편 소설으로 정의하고 제3자의 입장에서 평가합니다. 중년 교사와 학생의 은밀한 불륜 이야기와 요망한 여학생 캐릭터인 하타노 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와 불합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여장부 캐릭터 올리비아. 소년과 소녀의 성장 스토리를 담아낸 Case 3. 여기서 내부 이야기와 캐릭터는 소비되는 입장에 놓입니다. 이야기가 감동적이라거나,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는 감상을 표현할 수 있죠.

 

 

 

한편, 이야기가 진행되며 내부 이야기가 외부의 층과 내부의 층을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함에 따라 감상의 양상이 바뀝니다. 사실은 내부 이야기는 재귀적인 이야기였고, 캐릭터는 자기 자신이었던겁니다. 사실은 자기들이 이야기의 생산자였는데, 남의 이야기인 마냥 착각을 하고 있던겁니다. 이런 역할을 이해했을 때 외부 캐릭터는 내부 이야기를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통합합니다. 플레이어 또한 내부 이야기와 외부 이야기가 하나의 통합된 이야기임을 인지하게 됩니다. 이 때 플레이어는 똑같은 내부 이야기에서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본작의 강점은 감상의 주안점을 어디로 두더라도 이야기의 빛이 바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Case 2에서 보여준 올리비아의 당돌한 성격과 한편으로는 연약한 부분도 있다는 갭 모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는데요. 올리비아라는 내부 캐릭터가 어떻게 외부 이야기와 연결되는지, 그런 부분도 빈틈없이 확실하게 정의하고 있거든요.

 

 

 

본작과 마찬가지로 캐릭터의 존재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또한 SF적 상상력을 통해 그 주제를 전개하는 작품들은 모토나가 마사키씨가 자주 썼었는데, 'Sense off' , '네코나데 디스토션' 같은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모토나가 작품들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은 작중 캐릭터가 어떤 식으로 관측되고 인식되느냐 하는 철학적 주제 그 자체를 게임 속의 선택지와 에피소드를 통해서 풀어나가고자 하는 것이고, 결국 플레이어의 독해력이라든가,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수행하게 되는 역할이 상당히 강조됩니다. 고찰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에겐 반가운 게임이겠지만, 최근에는 서브컬쳐에서도 소샤게, 라이트노벨로 대표되는 스낵컬쳐 트렌드가 주류임을 생각해보면 그런 겜들은 신세대 유저들에겐 큰 매력이 없는 겜이죠.

 

 

 

반면에 본작에서 플레이어의 역할은 이야기의 주류에서 배제되고 이야기를 관찰하는 역할에 한정됩니다. 기존에는 플레이어가 수행해야 했던 아바타로서의 역할은 외부 캐릭터가 내부 이야기를 통해 대리적으로 충족시킵니다. 더 이상 플레이어가 깊은 고찰을 할 필요도 없고, 라이트노벨처럼 술술 읽으면서도 게임성은 자연스럽게 충족됩니다. 메타 게임들이 플레이어를 게임 내부로 끌어옴으로써 충족하고자 했던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는 사실, 본작과 같은 방식으로도 충족이 가능한게 아니었을까요? 다소 비약적이긴 하지만, 야겜의 미래-포스트에로게-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들어온다면 '백일몽'이라는 작품도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야겜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를 논할 때 모토나가씨의 작품이 주로 언급되는 것 처럼요.